제2장 The Goal of Preaching
1. The Goal of Preaching (설교의 목적)
목적이란 말은 사전적인 의미로 실현하려고 하는 일이나 나아가는 방향을 말한다. 심리학적 의미로는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의 관념. 또는 목표로 향하는 긴장을 말하고 철학적인 의미로 실천 의지에 따라 선택하여 세운 행위의 목표.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지향하는 실제적 대상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모든 말이나 글에는 반드시 화자나 저자의 논리가 있다. 논리는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기술이다. 논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이다. 아무리 좋은 논리가 있어도 설교자가 무엇을 말하는지 청중이 알지 못하면 그 논리는 아무 소용이 없다. 논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을 정확히 말하는 것이다. 목적이 정확하지 않은 글이나 말은 설득력이 약하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말하고 논리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설교는 하나의 말이나 글이나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설교에서 설교의 목적 없이 설교를 하는 경우가 많다. 심하게 말하면 설교를 하는 설교자도 자신이 전달하는 내용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청중은 그 설교를 들었을 때 그 설교에서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설교자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설교를 해야 한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설교를 한다는 것은 설교에서 반드시 AW(Aim Word 목적단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교자가 설교에서 목적의식을 가지고 설교만 해도 70% 이상 설교를 준비한 것이다.
2. AW
설교자가 설교에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AW(Aim Word)가 있다는 것이다. AW는 SPS(Spiritual Preaching System)의 용어로 목적단어라고 칭한다. 제1장에서 살펴본 바대로 설교자의 고민에서 AW의 위치는 WHAT에 해당한다.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 대한 설교자의 고민에서 해결에 해당한다.
설교자는 설교를 준비할 때 먼저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 라는 고민에서 설교자는 AW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해야 한다. AW는 설교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AW는 설교자가 청중에게 전달하고 싶은 설교의 내용을 한 단어로 정의하는 것을 말한다.
AW는 관점이다. 관점이란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때, 그 사람이 보고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 또는 처지를 말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관점이란 설교자가 보고자 하는 것,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설교의 모든 내용을 설교자는 AW를 통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설교자는 AW를 통해서 청중에게 감동을 주고 청중을 변화시키는 핵심 키워드로 잡아야 한다.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설교자가 설교의 본문이 준비가 되었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AW를 정하는 것이다. AW가 정해졌으면 이것은 한 문장으로 AW를 더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그것을 AWE(Aim Word Explanation- 이것에 대해서 11장에서 자세히 배우게 된다.)라고 말한다. 이것을 다시 설교의 요약 즉 TOOL(TOOL은 제3강에서 다루기로 한다)을 만든다. 이 TOOL은 전체 설교의 요약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AW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이 TOOL을 가지고 설교자는 설교의 전체 내용을 만든다. 이 설교 전체 내용이 AW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이 네가지 모두가 AW로 통일되어야 한다. 설교는 통일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통일성을 가진다는 것은 설교의 목적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AW는 설교의 목적이기 때문에 복음의 핵심요소가 된다. 설교자는 설교의 목적을 무엇으로 정해야 하는가? 설교자 자신이 이 시대 청중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시대에 전하고 싶은 내용을 AW로 정해야 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이 이 시대에 전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을 발견하면 된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목적 즉 성경의 AW는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 말에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림 3) 복음의 핵심에서 보여주듯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인간(청중)을 창조하였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살아야 할 인간이 사단의 속임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범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간이 죽었다. 그것이 하나님과 인간의 분리이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죽은 인간을 하나님이 긍휼이 여기시어 이 땅에 인간을 대속할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모든 인간의 죄를 위해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과 인간이 예수님을 통해 화목하게 되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께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믿음이 있는 자가 예수님께 나갈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를 회개할 수 있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 우리가 회개할 수 있고 하나님이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믿음이라는 단어는 예수님을 향하는 단어이기에 믿음은 AW가 될 수 있다. 설교의 목적이신 예수님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AW가 된다. AW는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기 위해 설교의 목적으로 삼은 단어이다. 그래서 AW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는 단어이다.
그림 3) 복음의 핵심
3. AW의 중요성
AW는 설교를 준비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AW는 목적단어이기 때문에 설교의 논리를 분명하고 선명하게 한다. AW가 있으면 설교자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보통 속된 말로 설교가 샌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설교자가 목적하고 의도한 바대로 설교를 하지 못하고 엉뚱한 말을 한다는 것이다. 왜 설교자에게 이러한 현상이 나타날까? 그것은 설교자가 정확한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AW가 없기 때문이다. AW를 가지고 설교자가 설교를 하게 되면 청중이 설교가 잘 들리게 된다. 왜냐하면 설교자의 의도와 목적을 알기 때문이다. AW가 있는 설교는 목적이 분명한 설교를 할 수 있다. 많은 설교자들에게 AW라는 무기 없다. 설교자가 AW가 있으면 청중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목적만 잘 전달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설교자가 AW를 갖고 설교하면 설교준비가 쉽다.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설교자가 명확하게 알고 설교를 하기 때문이다. 배가 나침반이 있으면 절대로 표류하지 않는다. 방향을 잃게 되면 나침반을 보고 방향을 잡으면 되기 때문이다. AW는 설교자에게 나침반과 같다. 설교자가 AW를 가지고 있으면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과 전달하는 중에 절대로 방황하지 않는다.
AW가 있으면 설교에 창의성(creative)이 생긴다. 창의성이란 크게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남들이 알지 못한 것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설교에 창의성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인사이트가 설교 가운데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것도 대단한 창의성이지만 더 중요하고 더 대단한 것은 설교자가 전달하는 모든 설교의 모든 본문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설교자가 청중에게 전달하는 설교의 내용은 어떤 새로운 이론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다. AW를 설교자가 가지고 있으면 어떤 본문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초대교회 설교의 핵심이었고 각 교회시대마다 설교의 핵심이 되어 왔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설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2000년이 넘게 수많은 설교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설교를 통해서 전해왔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설교에서 새롭게 들릴 수 있는가? 그런데 예수님은 마치 생수가 되셔서 마시고 마셔도 새롭다. 세상의 어떤 새롭고 신선한 내용보다 예수님은 새롭고 신선하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감격하고 감동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강하게 전하는 것이 바로 설교의 창의성이 되는 것이다.
설교자가 AW를 가지고 설교를 하게 되면 설교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 설교의 방향과 설교에서 무엇을 전달할지를 알기 때문이다. 무엇을 전할지를 아는 설교자와 모르는 설교자는 설교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자신감이다. 자신감이 있는 설교자는 청중에게 강하게 확신을 줄 수 있다. AW가 있으면 설교에서 에너지가 나온다. 설교에서 에너지가 나온다는 것은 청중이 은혜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AW는 설교의 목적과 논리를 분명하게 말하기 때문에 청중은 설교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따라갈 수 있다. 그래서 성도가 설교에서 은혜를 받는다.
설교자들이 설교를 끝내고 나면 설교의 결과에 대해서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설교자가 보통 싯체말로 오늘은 죽쒔다. 라고 말한다. 설교자가 AW를 가지고 설교를 하게 되면 최소한의 설교의 risk 즉 위험을 줄일 수 있다.
4. AW의 선택
설교를 준비할 때 수많은 단어 중에 어떤 단어를 AW(목적단어)로 사용해야 할까? AW로 사용할 수 있는 단어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한 편의 설교에서 설교자의 목적은 하나가 되도록 구성해야 한다. 만약에 한 편의 설교에서 두 개의 목적을 잡게 되면 그만큼 청중에게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힘이 약화되고 설교자에게 설교를 준비하고 전달하는데 힘이 든다. 그래서 한 편의 설교에서 AW는 하나를 잡아야 한다. 만약에 한편의 설교에서 AW가 2개가 된다면 그것을 설교 2편이 되는 것이다.
둘째로 AW는 하나님의 WANT가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WANT가 없으면 AW로 사용할 수 없다. 설교의 목적은 설교자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시대에 청중에게 말씀하시고 싶은 것을 전달해야 한다.
셋째로 AW는 청중의 NEED가 요구되어야 한다. 청중에게 필요가 없다면 그 단어는 죽은 단어가 된다. 결국 AW는 설교에서 하나님의 WANT와 청중의 NEED가 동시에 충족되어져야 그러나 하나님의 WANT가 우선적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같이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WANT를 전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의 NEED를 요구하고 하나님의 WANT를 무시하고 거부하였다. 결국 하나님의 WANT를 거부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던 것이다.
넷째로 AW는 청중이 추구할 수 있는 단어이여야 한다. 추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목적을 이루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청중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청중이 추구할 삶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AW는 청중이 추구할 단어이다.
다섯째로 AW는 청중이 헌신할 수 있는 단어이여야 한다. 청중은 언제 헌신하는가? 자신의 삶의 목적을 이룰 수 있으며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가 해결될 때 청중은 헌신하게 된다. AW는 청중이 헌신할 수 있는 단어이다. 청중은 AW를 붙잡고 헌신할 때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여섯째 AW는 청중의 문제를 해결하는 Turning Point가 된다. 청중이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를 설교를 통해 해결을 받게 되는데 그 때 청중은 AW를 통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는다. 그래서 AW는 청중의 문제에 Turning Point가 된다. 그래서 설교자는 AW를 목적지향적인 단어로 사용하게 된다.
일곱째 AW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모든 AW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다. 왜냐하면 모든 AW를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하였기 때문이다.
여덟째 AW는 긍정적인 단어이어야 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모든 것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단어가 필요하다. 모든 단어는 크게 긍정의 단어와 부정의 단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단어를 사용하는 자의 의도에 따라 긍정의 단어와 부정의 단어로 나누어진다.
마지막으로 AW는 목회의 전략적 단어이다. 목회라는 것은 무엇인가? 목회는 청중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녀로 살게 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청중은 그렇지 못하다. 만약 청중이 목회자의 의도대로 살고 있다면 아마 설교가 필요 없을 것이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청중은 변화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이러한 청중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목회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전략에도 목적이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으로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목적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설교자는 AW를 목회의 전략적 단어를 가질 때 청중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게 된다.
모든 AW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모든 AW는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하였다. 그러나 AW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AW가 예수 그리스도는 아니다. 단어적 의미에서 AW가 예수가 될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AW를 넘어선다. 공식적으로 표현하면 다음 그림과 같다.
